<인상 깊었던 말>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평가를 타인에게 맡기지 말라 - 타인의 생각에 의지하는 것으로는 자기 세상을 주도할 수 없다. 프리드리히 니체, 누군가에데 어떤 정보를 주거나 도움이 될 정보를 준 후에, 늘 이게 오지랖인지 아닌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주변 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렇게 의견을 묻곤 한다. "나 이거 오지랖이었나?" "내가 좀 선을 넘은 게 아닌가?" "그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제는 그러지 말자, 당신의 말과 행동을 왜 타인이 판단을 하는가? 스스로 오지랖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되는 거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스스로 평가하라. 자기만의 세상은 스스로 평가한 작은 조각이 모여 탄생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 이다. 전자는 구제할 수 있지만 후자는 스스로 늪에 빠지기 때문에 구할 수 없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라. 좋은 것을 줬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잊고 돌아서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
시간 낭비를 최대한 줄이며 상승하는 삶을 사는 법 - 위대해지려면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누구나 상상을 한다. 다만 방향을 제대로 정한 상상은 창조로 이어지고, 방향이 없는 상상은 공상에 머물게 된다. 사람 자체가 위대해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제대로 설정한 덕분에 자신이 가진 힘과 재능을 모두 한 방향에 담을 수 있어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삶을 살 수 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쏟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신에게만 주라. 그 모든 시간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써라." 다음에 소개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살면 가능하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다. 굳이 오해할 여유도, 그를 의식하며 신경을 쓸 여유도 없다. 나는 나를 위해 쓸 시간도 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너에게 내 시간을 조금도 쓸 수 없다. 나는 내게 있는 모든 여유를 나 자신에게만 줄 것이다.
애를 써서 받은 사랑은 나의 것이 아니다. - 반드시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평소의 자세로 담담히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차분한 시간을 보내는 기간이다. 마음에 여유가 깃들면 누구나 차분한 시간을 즐길 수 있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으니 바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무리하게 애쓰는 마음'에 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라. 가장 '나다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평소와 다른 자세를 취하면 몸에 무리가 오면서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기 힘들다.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 자꾸만 애를 쓰며 내가 바뀌어야 한다면, 이를 통해서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그건 내가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오랫동안 자신의 가치를 고요하게 유지하는 사람 - 내가 항상 누군가에게 귀로 들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실천한 것처럼,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얼음 덮인 산꼭대기 위해서 고요히 살아가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잘 나갈 때가 온다. 그것은 그의 재능과 운이 만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그렇게 나타난 현상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행운으로 끝내지 않고, 스스로 관리하며 죽는 날 까지 일정한 속도로 성장하게 만든다. 얼음 덮인 산꼭대기 위에서 잠시 머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지속에 있다. 뭐든 지속하려면 무언가를 반복해야 하며, 그렇게 매일 무언가를 반복하다보면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고요해진다. "너의 새벽잠이 없어지는 이유는, 새벽에 무언가를 하라는 하늘의 뜻이다." 삶은 우리에게 그 나이에 맞는 방법을 알려준다. 젊을 때는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일어나면 이른 아침일 때가 많았는데, 중년이 되면 조금 달라진다.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얼마나 지나지 않아 이른 새벽에 깨어 나게 된다. 이유가 뭘까? 결국 시간의 신은 우리에게 반복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고요히 자신의 삶을 견디려면 꼭 위의 필사문장을 되새겨라.
혼자 있지 못해서 늘 외로움을 함께 견딜 누군가를 찾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잠시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평생 지독한 공허함에 방황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색을 잃었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색을 찾고 더욱 진하게 그리는 '정체성의 공간'이다.
'그저 그런 일'을 '그냥' 반복해서 하면, 특별한 자신을 만날 날이 반드시 온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미치도록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는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장면이다. 그런 일을 찾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미치도록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면, 뭐든 찾아서 반복해보라. 이건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다. 당신의 하루는 매우 위대하다. 음식을 계속 먹으면 위가 늘어나서 그걸 감당하듯, 우리의 하루도 역시 당신이 의지를 갖고 많은 것을 담고자 한다면 백 개의 주머니를 제공할 것이다. 그 귀한 하루를 매일 루틴처럼 반복하게 된다면 얼마나 위대한 기적이 탄생할까. 스스로 자신의 내일을 기대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 자신에 대한 평판에만 지나치게 신경써서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좋지 않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연연하지 마라. 우리는 저마다 자기 삶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산다. 그런데 왜 내 삶은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매일 던지는 몇 가지 질문 때문이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이렇게 하면 나를 좋아해 주겠지?" 왜 우리는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남을 생각하고 의식하며 보내는 걸까? 남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게 정말 중요한 가치인데, 왜 평생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인생을 사는 걸까? "나를 공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이 순간을 지배하는 일이다. 순간만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힘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바로 서는 일이다.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남을 연구하지 말고, 나를 연구해야 한다. 나는 '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진짜 인생을 시작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 친구들이여, 우리가 젊었을 때, 우리는 가장 고통스러웠다. -프리드리히 니체, 돌아보면 젊었을 때 인생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라 느끼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그 귀한 시간에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방황이나 후회만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육체적인 힘을 갖고 있어서 활력도 가장 높은 수치로 올라가던 그 시절, 무언가에 집중하며 전념했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위대했을까.
당신이 지식인이라면 세상과 사람을 이렇게 보라 - 지식인이라면 적을 사랑할 수도,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살다보면 괜히 싫고 미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그가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주변에 하고 다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 그를 미워했던 나의 과거가 부끄럽게 여겨지게 되며 동시에 그를 좋아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 역시 그렇다. 이유 없이 상대가 밉고 싫다는 건, 내가 가진 마음의 크기가 그만큼 작고 협소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언제나 문제는 내 안에 존재한다. "지식인이라면 늘 세상과 사람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의 하루는 그 근거를 찾는 여정이어야 한다."
인간의 첫 번째 조건, 당신의 실수를 잊지 말라 - 여자를 만든 것이 신의 두 번째 실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당신이 여자라 하더라도, 여자를 만든 것이 신의 두 번째 실수라는 말에 분노할 필요는 없다. 신의 가장 큰 실수는 남자를 만든 것이니까. 그럼 그는 왜 굳이 인류의 존재를 신의 실수라고 말할 것일까? 여기에는 당신의 실수를 잊지 말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신은 자신이 만든 인류가 소중한 자연을 망치고 서로 비난하고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하지만 신이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그 실수를 사는 내내 기억했다는 사실이다. "그저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당신의 실수를 기억하면 더 나은 자신이 되어라." 니체는 잘 잊는 자들은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에둘러 조롱한다.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최악의 방법으로 자신의 실수를 잊기 때문이다. 그건 극복이 아니라 회피와도 같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실수를 잊지 않기 위해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이 고통스러운 인생을 웃으며 견딜 수 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라 - 악인에게는 공톰점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 이다. 자신을 미워해서 나쁜 짓을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 범죄가가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말과 행동을 저지르는 악인을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 왜 굳이 못되게 굴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망을 갖게 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걸까? 그러나 사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이었다. 미운 자신을 너무 견길 수 없었기에 그걸 잊고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수많은 타인에게 투정을 부린 것이다. "남에게 못되게 군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라." 이제는 주변에서 나쁜 태도를 갖고 있거나 못된 말과 행동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가련하게 여기며 바람처럼 스치면 된다. 그들은 안타깝게도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며 증오하는 사람들이니까.
네가 그토록 되고 싶은 네가 되어라 - 네 운명을 사랑하라. -프리드리히 니체, 그냥 쉽게 듣고 지나치면 오해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어진 것에 만족하거나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더 나은 모습을 향해 전진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배울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은 중간에 힘들다고 결국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운명이 주어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서 원하는 자신이 되라는 날카로운 조언인 셈이다. "주어진 그대로가 아니라, 네가 그토록 되고 싶은 네가 되어라." 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그 해석에 그간 그 사람이 살았던 모든 태도와 지성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제대로 읽어야 보고 싶은 것이 아닌,꼭 봐야 할 것이 보인다.
열정은 알아서 찾고, 각오도 알아서 하라 - 가장 치열한 전투는 자신과의 전투이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제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게 도울 수 있는 적당한 책 좀 소개해 주세요." 나는 바로 이렇게 응수한다. "열정은 알아서 찾는 겁니다. 책을 비롯한 모든 지적인 도구는 이미 열정을 소유한 사람을 돕는 것이지, 없는 사람의 열정까지 찾아줄 순 없어요." 각오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도 당신을 각오하게 만들 수는 없다.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연습하기 전에 알아서 각오를 하고 온 선수와, 감독과 코치에게 자극을 받아 각오를 다지려는 선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전자는 노력과 땀이 모두 실력이 되지만, 후자는 노력과 땀이 모두 그냥 말라서 사라진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매일 치열하게 점검해보라. 잃어버린 열정은 네가 찾는 거고, 각오는 알아서 하는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자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그걸 할 수 없다면 태어날 이유가 없다. 스스로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의지가 곧 그 사람의 지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매일 더 큰 자신으로 거듭나라. 그리고 만약 지금 당신의 나이가 서른이 지나 마흔으로 향하고 있다면, 이제는 지체할 여유가 없으니 꼭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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