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번째 책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상깊었던 책의 내용>
'닥치는 대로' 산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할 수 없다. 세상은 제 갈길을 가고, 사람들은 또 저마다 자기 삶은 살 뿐이다. 세상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소망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배려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비난하고 남을 원망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인든 실패든 내 인생을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결정권' 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열등감은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 중에서도 단연 고약한 것이다. 열등감에 깊이 빠지면 자기자신을 비천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는 기쁜 삶을 살지 못한다. 기쁘지 않은 삶은 휼륭하기 어렵다. 열등감과 자기비하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정신승리법'이 필요하다.
도전하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와 넘을 수 없는 벽에 매달려 인생을 소모하는 것 역시 어리석다. 모든 나무와 모든 벽을 오르고 넘어서야 행복한 삶,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게 아니다. 내게 적합한 나무, 노력하면 넘을 수 있고 넘는게 즐거운 벽을 잘 골라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인생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을 후회없이 즐길 수 있다.
유한한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환희와 행복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 마음이 든다. 나는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 단 한번만,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살고 싶은 뿐이다. 하루의 삶은 하루 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 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무엇엔가 가슴설레어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쉬이 밝지 않음을 한탄한다.
상처받지 않은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하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자. 그 일을 열정적으로 남보다 잘하자. 그리고 그걸로 밥도 먹자. 이것이 성공하는 인생아니겠는가.'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살아 있는 동안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먼 훗날, 또는 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옳다. 그러니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말자.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